일본 침대열차 산라이즈 이즈모 탑승기｜도쿄~이즈모시 여행 블로그

오후 8시 40분, 도쿄도 지요다구 ‘도쿄역’.
오늘 탑승하는 열차는 침대 특급 ‘선라이즈 이즈모호’입니다.
매일 정기 운행하는 야간 침대 열차로는 일본에서 유일하죠.
목적지는 시마네현 ‘이즈모시역’.
약 12시간 10분의 기차 여행입니다.

출발까지는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먼저 ‘미도리노마도구치(みどりの窓口)’로.
예약해 두었던 승차권을 수령했습니다.

하루 1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도쿄역답게,
밤에도 역사 내부는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승차권을 받은 뒤에는 도시락을 찾으러 갔습니다.

도쿄역이 워낙 넓어서 약간 걱정했지만,
의외로 금방 역벤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역이 큰 만큼, 역사 내부 상점도 충실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용으로 도시락 하나를 고르기로 했습니다.
선반에는 ‘소고기 스키야키 도시락!’이나 ‘신슈 명물 산적 도시락!’ 등
식욕을 자극하는 도시락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쿄역에 오기 조금 전에 규동을 먹었기 때문에
이미 배가 터질 듯한 상태…
고칼로리 도시락은 선뜻 손이 가지 않더군요.

이리저리 고민한 끝에 고른 것은 ‘30가지 식재료 균형 도시락’.
이름부터 뭔가 건강을 의식한 분위기.
괜히 의식 높은 사람처럼 되어버렸네요.

도시락도 샀겠다, 이제 9・10번선 승강장으로 향합니다.

21시 06분, 선라이즈 이즈모호 출발 40분 전.
이미 승강장에는 길게 늘어선 승객들의 줄이 있었습니다.
‘이 승객들, 베테랑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저도 줄에 섰습니다.
보아하니 1시간 전부터 줄 서는 게 정석인 듯합니다.
다른 승객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샤워카드’를 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선라이즈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샤워카드’.
이게 꽤 인기 아이템이라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출발 전 쟁탈전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습니다.

21시 20분, 선라이즈 이즈모호가 도쿄역에 도착.
1998년 7월 10일 데뷔 이래 변함없는 외관.
새벽노을의 붉은색, 아침 안개의 베이지, 지평선을 떠오르게 하는 금빛 라인.
밤을 넘어 아침으로 향하는 열차에 딱 어울리는 색조입니다.

승강장에서는 다른 승객들도 카메라를 꺼내 기념 촬영.
오랫동안 동경하던 침대 열차가 눈앞에 나타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샤워카드를 손에 넣어야 해’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쟁탈전의 시작입니다.

차내 문이 일제히 열리자, 승객들은 빠른 걸음으로 열차 안으로 향했습니다.
사전 정보에 따르면 샤워카드 자판기는 3호차와 10호차 라운지 옆에 1대씩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1호차나 11호차에서 타는 것이 더 가깝다는 소문도…

반신반의하며 11호차 앞에 줄을 섰더니, 이게 대성공!
무사히 자판기에 도착해 샤워카드(330엔)를 획득했습니다.
차내는 좁고 인파로 가득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간신히 통로를 빠져나와,
드디어 예약한 방으로 향했습니다.

예약한 객실은 B침대 ‘솔로’ 상단.
선라이즈 이즈모호에서 가장 저렴한 개인실입니다.

문을 열면 눈앞에 작은 계단이 보이고,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계단 부분뿐.
전체적으로 콤팩트한 구조입니다.

하단 객실은 천장이 높아 준비하기에 편해 보였지만,
상단은 그만큼 전망이 좋습니다.
약간 불편하긴 해도 참을 수 있는 정도.
“야간 열차는 좁은 맛에 타는 거지”라고 느끼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이 작은 공간이 여행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자, 몇 분 뒤 차장님이 표 확인차 찾아왔습니다.
도장을 받아 정식으로 탑승 완료.
출발까지 남은 시간 동안 방 안에서 짐을 풀며 여행 준비를 마쳤습니다.

21시 50분, 선라이즈 이즈모호는 정시에 도쿄역을 출발.

잠시 후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침대 특급 선라이즈 세토호 및 선라이즈 이즈모호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차역 안내와 중간에 열차 분리 안내 등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차분한 일본어 방송 뒤에는 영어 내레이션도 흘러나왔습니다.

22시 50분, 샤워카드를 들고 조용히 샤워실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면 눈앞에 탈의실이 있고, 오른쪽에 샤워실이 있습니다.
카드 투입구는 벽에 걸린 드라이기 아래에 있었습니다.

살짝 카드를 넣자 타이머가 작동하면서,
드디어 6분간의 샤워 타임이 시작됩니다.

샤워실에는 시작/정지 버튼이 있어
물이 나오는 동안만 타이머가 진행되는 구조.
물을 아껴가며 샤워를 시작했습니다.

쾌적한 샤워 시간이었냐고 묻는다면, 실제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눈을 감고 샴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심을 잃고 휘청—
쿵, 어깨가 벽에 부딪히고, 그 반동으로 반대쪽으로도 흔들리며 이번엔 팔꿈치가 쾅.

여긴 기차 안, 그냥 샤워실이 아닙니다.
평범한 전철 안에서 눈을 감고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절수 타이머와 흔들리는 발밑.
그야말로 균형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샤워 카드를 사는 것’, ‘절수하면서 씻는 것’, ‘균형 잡기’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아, 마치 작은 전장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절수를 의식하며 샤워한 결과,
생각보다 시간이 꽤 남았습니다.
4분 정도 여유가 있었고, 나의 절수 능력에 살짝 놀랐습니다.

남은 시간은 호화롭게 다 써버리고, 마지막엔 다음 사람을 위해
세척 버튼을 눌러 종료.

머리를 말리기 위해 드라이어 앞으로.
하지만 드라이어 바람이 정말 약했습니다.
평소 드라이어라면 3~4분이면 끝나는데, 이번에는 7~8분이나 걸렸습니다.
방 안 에어컨 바람이 더 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어쩌면 방의 에어컨으로 말리는 편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를 말리고, 샤워실을 나왔습니다.

샤워실 문 바로 앞에는 자판기가 있었습니다.
목욕 후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전부 품절.
캔 콜라(130엔)는 남아 있었기에, 목욕 후의 한 잔은 콜라로 정했습니다.

캔을 들고 미니 라운지로 이동.
기차 내부는 겨울의 찬 공기로 조금 쌀쌀했지만, 목욕 후 뜨거워진 몸엔 딱 좋았습니다.

문득 둘러보니, 라운지 창문 기둥과 벽에는
‘소음 문제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주의 스티커가 다수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옆 차량에는 개인실이 있으니, 배려가 필요한 듯합니다.

조용히 콜라를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23시경,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들었는데,
문득 눈을 뜬 시간은 새벽 3시 28분이었습니다.

열차는 정차 중.
살며시 블라인드를 들어 밖을 봐도, 펼쳐진 건 고요한 어둠뿐.
스마트폰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니, 여긴 오미나가오카역.
알고 보니 뒤에서 달려오던 JR 화물열차를 먼저 통과시키기 위한 일시 정차였습니다.

잠시 후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선라이즈호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취침.

그리고 다음에 눈을 뜬 건 새벽 5시 10분.
이번엔 화장실에 가고 싶어, 멍한 머리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에 들어갔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아 깨어 있게 되었습니다.

5시 15분, 오사카역 도착.
여기서 열차는 도카이도 본선에서 산요 본선으로 바통을 넘깁니다.
차장과 운전사가 교대하고, 선라이즈호는 다음 도시를 향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3분간 정차.
새벽 5시 18분, 열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오사카역을 떠나자마자, 차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 열차 지연에 대해 안내 말씀드립니다.”

내용은, 앞서 달리고 있던 화물열차가 작은 동물과 충돌해
확인 작업이 이뤄졌고, 약 50분의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화물열차는, 몇 시간 전 오미나가오카역에서 먼저 가도록 했던 바로 그 열차였습니다.
보통 열차였다면 50분 지연에 짜증이 났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선라이즈 열차의 50분 지연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선라이즈 열차에서 50분 더 머무를 수 있다는 게
조금 이득 본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06시 20분경, 밤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2월의 추위가 아직 남은 계절, 창밖 풍경엔 얇게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제 곧, 오카야마역.
선라이즈 열차만의 명물 행사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07시 15분, 오카야마역에 도착.
여기서 선라이즈 세토호와 선라이즈 이즈모호가 분리되는 특별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선라이즈 세토호는 고치현 다카마쓰시로, 선라이즈 이즈모호는 시마네현 이즈모시로 각각 여정을 이어갑니다.

선라이즈 이즈모호 승객만이 이 분리 작업의 광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조용히 작업이 시작되고,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분리된 타이밍에 맞춰, 선라이즈 세토호는 다카마쓰를 향해 먼저 출발했습니다.
저도 선라이즈 이즈모호로 돌아가, 다시 이즈모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08시 10분, 비추타카하시역에서 니이미역 부근을 주행 중.

계속 방 안에만 있었기에, 기분 전환도 겸해서 미니 라운지가 있는 10호차로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밤, 도쿄역에서 구입한 ‘밸런스 도시락’.
거의 채소로 이루어진 구성에, 생선 한 조각이 들어간 단순하지만 건강한 내용입니다.

차내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어 차갑게 먹었지만 맛있었습니다.
기름진 고기를 식은 채로 먹는 것보다, 지방이 적은 밸런스 도시락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니이미역을 지나자, 풍경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월 하순부터 2월 초순이 설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느끼고 있어서,
이 절호의 타이밍에 탑승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하얀 눈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요나고역에 도착하기 몇 분 전, 차장님의 관광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요나고시 옆에 위치한 사카이미나토시는, 일본 유수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항구 도시입니다.”
“‘게게게의 키타로’ 작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사카이미나토에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도 있습니다.”

그 안내를 듣고 있으니, 조금 흥미가 생겼습니다.
요괴 동상이 줄지어 선 거리라니, 꽤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꼈죠.
관광 안내가 계기가 되어 가보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유보다 더 중요한 건, 오늘 탈 예정인 오키노시마행 페리입니다.
이즈모시역에서 내려 향할 곳은 사카이미나토.
이 상태라면 역 앞에서 택시를 잡지 않으면 시간에 맞추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택시 요금을 검색해 봤습니다.
이즈모시에서 사카이미나토까지의 예상 택시 요금은 “약 22,000엔”.
여기 와서야, 그 50분 지연이 슬금슬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10시 50분, 이즈모시역에 도착.
안내된 대로, 열차는 정확히 50분 지연 상태였습니다.
길었던 듯하면서도 순식간이었던 여정이 하나의 마무리를 맞이했습니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열차 안에 있었기에, 지상에 발을 디딘 순간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흔들림이 컸던 만큼 깊은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쾌적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생 최초의 침대 열차 여행.
선라이즈 이즈모호에서 보낸 이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카마쓰행 세토호에도 꼭 한번 타보고 싶습니다.

■ 노비노비 좌석 (가장 저렴한 공용실)
・운임(12,210엔) + 특급 요금(3,300엔) + 침대 요금(530엔)
・총액｜16,040엔

■ 솔로 (가장 저렴한 개인실)
・운임(12,210엔) + 특급 요금(3,300엔) + 침대 요금(6,600엔)
・총액｜22,110엔

■ 샤워룸 이용에는 “샤워 카드”가 필요!
・1장 330엔
・1회 6분 이용 가능
・1장당 1회 사용 가능

■ 샤워 카드 구매 방법
・판매기는 3호차와 10호차 라운지 옆에 설치
・각 차량 20장 한정, 총 40장까지 (급수 탱크 용량 문제로 제한됨)

■ 샤워룸 위치 및 이용 방법
・3호차, 10호차
・신발을 벗고 이용하는 협소한 개인형 샤워룸
・탈의실에 카드 삽입기가 있으며, 구매한 샤워 카드를 삽입하여 이용